계엄의 밤, 공포도 대처도 광주는 달랐다

입력 2025.05.13 (19:09) 수정 2025.05.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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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은 1980년 5월 광주와 닮았고, 이 때문에 5.18을 경험한 직접 사람들의 공포는 다른 지역과 달랐습니다.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5.18민주화운동을 현재적 시각에서 되짚어보는 연속기획, 오늘은 두번째 순서로 광주 사람들의 12.3 비상계엄의 밤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보도에 이성각 기자입니다.

[리포트]

헬기가 국회로 날아들고, 총을 든 군인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모습은 실시간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는 TV화면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김길자/문재학열사 어머니 : "저것이 진짜일까 참말은 아니겄지..."]

고등학생 아들을 잃었던 5.18의 기억에 두려움도 컸지만, 그만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더 간절했습니다.

[김길자/문재학열사 어머니 : "지금 죽어도 두려울 것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그걸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난 갈 수 있어요."]

5.18 유족으로, 진상규명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정수만 전 유족회장, 비상계엄 소식에 가장 먼저 한 일은 40년 넘게 조사해 온 각종 기록을 외장하드에 담아 화분 물받침에 숨기는 것이었습니다.

[정수만/전 5.18 유족회장 : "가져와서 (물받이를)빼서 이 속에다 다 넣어 놓은 거예요."]

5.18 당시 영장없이 수천명을 체포했던 예비검속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정수만/전 5.18 유족회장 : "그 당시에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니까. 그래서 누가 여기까지 손댈 일은 없겠지(생각했습니다)."]

그날 밤, 광주사람들이 느꼈던 공포도 잠시 공포는 분노로, 다시 저항으로 이어졌습니다.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당시 금남로에서 팔에 총을 맞았던 이진씨.

[이진/5.18유공자 : "공포탄을 쏘는 줄 알았는데, 한 50미터 정도 뒤로 갔던 것 같은데 내 팔이 뚝 떨어지는 거예요."]

지난해 12월 3일 밤, 계엄군에 대한 두려움에도 그는 지체없이 국회로 향했고, 이후에도 대형 깃발을 직접 만들어 탄핵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진/5.18유공자 : "5.18은 먼저 가신 분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그러니까 항상 참여하게 되고, 그날도 여지없이 (국회에)가게되고."]

경기도 평택에서 비상계엄 소식을 접한 김정희변호사도 지체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국회로 향했습니다.

김변호사는 비상계엄의 현장을 지키는 것이 목격하는 것이, 막아서는 것이, 오월 정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정희/전 민변 광주전남지부장 : "(80년 5월 27일 도청 희생자들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따져서 모였던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구요. 아마 그런 선배들의 역사를 보고 그런 일이 있을 때는 현장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으로."]

5.18의 산증인들은 극심한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저항과 용기있는 행동으로 '광주답게' 그날 밤을 지새웠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촬영기자:안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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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엄의 밤, 공포도 대처도 광주는 달랐다
    • 입력 2025-05-13 19:09:11
    • 수정2025-05-14 10:56:00
    뉴스7(광주)
[앵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은 1980년 5월 광주와 닮았고, 이 때문에 5.18을 경험한 직접 사람들의 공포는 다른 지역과 달랐습니다.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5.18민주화운동을 현재적 시각에서 되짚어보는 연속기획, 오늘은 두번째 순서로 광주 사람들의 12.3 비상계엄의 밤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보도에 이성각 기자입니다.

[리포트]

헬기가 국회로 날아들고, 총을 든 군인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모습은 실시간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는 TV화면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김길자/문재학열사 어머니 : "저것이 진짜일까 참말은 아니겄지..."]

고등학생 아들을 잃었던 5.18의 기억에 두려움도 컸지만, 그만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더 간절했습니다.

[김길자/문재학열사 어머니 : "지금 죽어도 두려울 것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그걸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난 갈 수 있어요."]

5.18 유족으로, 진상규명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정수만 전 유족회장, 비상계엄 소식에 가장 먼저 한 일은 40년 넘게 조사해 온 각종 기록을 외장하드에 담아 화분 물받침에 숨기는 것이었습니다.

[정수만/전 5.18 유족회장 : "가져와서 (물받이를)빼서 이 속에다 다 넣어 놓은 거예요."]

5.18 당시 영장없이 수천명을 체포했던 예비검속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정수만/전 5.18 유족회장 : "그 당시에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니까. 그래서 누가 여기까지 손댈 일은 없겠지(생각했습니다)."]

그날 밤, 광주사람들이 느꼈던 공포도 잠시 공포는 분노로, 다시 저항으로 이어졌습니다.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당시 금남로에서 팔에 총을 맞았던 이진씨.

[이진/5.18유공자 : "공포탄을 쏘는 줄 알았는데, 한 50미터 정도 뒤로 갔던 것 같은데 내 팔이 뚝 떨어지는 거예요."]

지난해 12월 3일 밤, 계엄군에 대한 두려움에도 그는 지체없이 국회로 향했고, 이후에도 대형 깃발을 직접 만들어 탄핵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진/5.18유공자 : "5.18은 먼저 가신 분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그러니까 항상 참여하게 되고, 그날도 여지없이 (국회에)가게되고."]

경기도 평택에서 비상계엄 소식을 접한 김정희변호사도 지체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국회로 향했습니다.

김변호사는 비상계엄의 현장을 지키는 것이 목격하는 것이, 막아서는 것이, 오월 정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정희/전 민변 광주전남지부장 : "(80년 5월 27일 도청 희생자들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따져서 모였던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구요. 아마 그런 선배들의 역사를 보고 그런 일이 있을 때는 현장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으로."]

5.18의 산증인들은 극심한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저항과 용기있는 행동으로 '광주답게' 그날 밤을 지새웠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촬영기자:안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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