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사과”…46년 만에 ‘긴급조치 위반’ 무죄

입력 2025.06.04 (17:3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46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김용진 씨46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김용진 씨

■ "긴급조치 해제하라" 외쳤다 징역형…46년 만에 무죄

박정희 정권 당시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46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대전지방법원 제12형사부는 1979년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던 69살 김용진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 씨는 서강대에 재학 중이던 1977년, 민주화 시위를 하다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옥고를 치르던 1978년, 김 씨는 다시 서울구치소와 공주교도소에서 각각 "긴급조치 해제하라", "민주정치 이룩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가 기소돼 이듬해인 1979년 징역 1년 6월을 추가로 선고받았습니다.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에 따라 1975년 5월 선포됐습니다.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와 집회나 시위,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헌법을 부정ㆍ반대ㆍ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2013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긴급조치 9호를 위헌으로 결정했고, 같은해 대법원도 전원합의체에서 위헌과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위헌 결정 직후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이 잇따랐고 김 씨도 10여 년 전 민주화 시위를 하다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첫 번째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두 번째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에 대해서도 다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지난달 첫 공판이 끝난 뒤 재심을 청구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씨는 "지난해 12월, 계엄을 지켜보며 민주주의를 환기하고 싶었다"고 답했습니다.


■ "유죄를 선고한 법원도, 무죄를 선고한 법원도 대한민국 법원"

한 달 만에 열린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해 위헌·무효임이 분명하다"며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선고 이후 김병만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도 밝혔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과거에 유죄를 선고한 법원도 대한민국 법원이고, 오늘 무죄를 선고한 법원도 대한민국 법원"이라며 "피고인이 겪었던 고초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의 구성원으로서 늦었지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또, "오늘 선고가 단순히 피고인이 겪었던 고초가 잘못됐음에 그치지 않고 피고인이 최후 진술에서 말씀하신 취지와 같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내 상황이 혼란스럽고 사법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제 있었던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안정적으로 정리돼 가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언급했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재판 업무에 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4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김 씨는 기자들에게 "이번 판결이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재판장님 말씀처럼 이런 과정이 축적돼야 한다. 과거가 현재 우리를 구한 것처럼, 지금의 우리가 또 미래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늦었지만 사과”…46년 만에 ‘긴급조치 위반’ 무죄
    • 입력 2025-06-04 17:31:34
    심층K
46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김용진 씨
■ "긴급조치 해제하라" 외쳤다 징역형…46년 만에 무죄

박정희 정권 당시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46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대전지방법원 제12형사부는 1979년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던 69살 김용진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 씨는 서강대에 재학 중이던 1977년, 민주화 시위를 하다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옥고를 치르던 1978년, 김 씨는 다시 서울구치소와 공주교도소에서 각각 "긴급조치 해제하라", "민주정치 이룩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가 기소돼 이듬해인 1979년 징역 1년 6월을 추가로 선고받았습니다.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에 따라 1975년 5월 선포됐습니다.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와 집회나 시위,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헌법을 부정ㆍ반대ㆍ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2013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긴급조치 9호를 위헌으로 결정했고, 같은해 대법원도 전원합의체에서 위헌과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위헌 결정 직후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이 잇따랐고 김 씨도 10여 년 전 민주화 시위를 하다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첫 번째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두 번째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에 대해서도 다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지난달 첫 공판이 끝난 뒤 재심을 청구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씨는 "지난해 12월, 계엄을 지켜보며 민주주의를 환기하고 싶었다"고 답했습니다.


■ "유죄를 선고한 법원도, 무죄를 선고한 법원도 대한민국 법원"

한 달 만에 열린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해 위헌·무효임이 분명하다"며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선고 이후 김병만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도 밝혔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과거에 유죄를 선고한 법원도 대한민국 법원이고, 오늘 무죄를 선고한 법원도 대한민국 법원"이라며 "피고인이 겪었던 고초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의 구성원으로서 늦었지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또, "오늘 선고가 단순히 피고인이 겪었던 고초가 잘못됐음에 그치지 않고 피고인이 최후 진술에서 말씀하신 취지와 같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내 상황이 혼란스럽고 사법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제 있었던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안정적으로 정리돼 가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언급했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재판 업무에 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4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김 씨는 기자들에게 "이번 판결이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재판장님 말씀처럼 이런 과정이 축적돼야 한다. 과거가 현재 우리를 구한 것처럼, 지금의 우리가 또 미래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