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에 피어난 민족혼, ‘남궁억’ 선생
입력 2025.07.14 (19:05)
수정 2025.07.1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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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제 곧 제헌절과 광복절이 돌아옵니다.
태극기와 함께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게 바로, 겨레의 꽃 무궁화인데요.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 정신이 꺾이지 않도록 무궁화운동을 주창한 한서 남궁억 선생을, 이번 주 강원유산지도에서 만나봅니다.
김문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첩첩산중에 네모반듯한 묘역이 자리 잡았습니다.
돌계단 양쪽은 무궁화 모양이 지키고 있습니다.
뜨거운 열기를 이겨낸 무궁화가 묘역 곳곳에 끊임없이 피고 집니다.
이곳에 잠든 건 한서 남궁억 선생.
선생의 일생엔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녹아있습니다.
고종의 영어 통역관으로 관직에 입문했지만, 구한말, 나라를 구하기 위해 민족운동가와 언론인으로 변신합니다.
1896년 독립협회 창립에 힘을 보탰고 '독립신문' 영자판 창간에도 나섭니다.
황성신문 초대 사장을 지내면서는 2천만 대중을 일깨우는 기사를 써냅니다.
재임 4년 동안 두 번이나 구속됐지만, 붓을 꺾지 않았습니다.
[현재호/한서남궁억기념관 문화해설사 : "언론인으로서 당신이 사명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왔을 때 교육자로서 사립학교 운동에 본격적으로 헌신하시죠. 그래서 여기까지 내려오셔서 이 시골에다가 학교를 세우고, 그리고 역사책을 쓰고 그러면서 노래를 만들어서 애국 가요들, 사상가들을 만들어서 전국에서 부르게 하고."]
특히, 낙향한 홍천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모곡학당'을 세워 우리말과 민족의식을 가르쳤습니다.
무궁화 운동도 시작합니다.
묘목 7만 그루를 길러 전국에 심게 해 민족혼을 고취시켰습니다.
홍천이 무궁화의 고장이 된 것도 남궁억 선생이 뿌린 씨앗입니다.
[현재호/한서남궁억기념관 문화해설사 : "벚꽃은 더군다나 열흘 안에 다 지지 않냐? 그러나 이 무궁화는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당당히 맞서서 피는 꽃이고 계절을 넘어 피는 꽃이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100일 동안 주야장천 피는 꽃나무다. 나무 한 그루에서 5천 송이에서 만 송이의 꽃이 피고 지거든요. 이런 생명력을 가진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그러다 1933년, 서대문형문소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습니다.
당시 신문조서엔 굴하지 않는 결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불온한 역사를 생도에게 가르친 의사는 어떤가?"
[홍천경찰서 남궁억 경찰신문조서/AI 음성대역 : "아무리 어린이라도 조선민족인 이상 조선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르쳤으니 나는 별로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조선민족으로서는 당연 한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오."]
남궁억 선생 묘역은 2000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독립'이 거저 주어진 게 아님을 기억하기 위해섭니다.
지금도 그 후신인 모곡초등학교와 한서초등학교에선 선생의 정신을 가르칩니다.
[최영복/모곡초등학교 교장 : "남궁억 선생이 이 학교를 세워놓은 그 생각과 그 행동이 몸에 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옳겠다.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큰 공동체를…."]
한 손엔 무궁화, 한 손엔 성경을 든 남궁억 선생의 정신.
'일편단심' 꽃말을 담은 무궁화를 따라 오늘도 쉼 없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
이제 곧 제헌절과 광복절이 돌아옵니다.
태극기와 함께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게 바로, 겨레의 꽃 무궁화인데요.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 정신이 꺾이지 않도록 무궁화운동을 주창한 한서 남궁억 선생을, 이번 주 강원유산지도에서 만나봅니다.
김문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첩첩산중에 네모반듯한 묘역이 자리 잡았습니다.
돌계단 양쪽은 무궁화 모양이 지키고 있습니다.
뜨거운 열기를 이겨낸 무궁화가 묘역 곳곳에 끊임없이 피고 집니다.
이곳에 잠든 건 한서 남궁억 선생.
선생의 일생엔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녹아있습니다.
고종의 영어 통역관으로 관직에 입문했지만, 구한말, 나라를 구하기 위해 민족운동가와 언론인으로 변신합니다.
1896년 독립협회 창립에 힘을 보탰고 '독립신문' 영자판 창간에도 나섭니다.
황성신문 초대 사장을 지내면서는 2천만 대중을 일깨우는 기사를 써냅니다.
재임 4년 동안 두 번이나 구속됐지만, 붓을 꺾지 않았습니다.
[현재호/한서남궁억기념관 문화해설사 : "언론인으로서 당신이 사명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왔을 때 교육자로서 사립학교 운동에 본격적으로 헌신하시죠. 그래서 여기까지 내려오셔서 이 시골에다가 학교를 세우고, 그리고 역사책을 쓰고 그러면서 노래를 만들어서 애국 가요들, 사상가들을 만들어서 전국에서 부르게 하고."]
특히, 낙향한 홍천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모곡학당'을 세워 우리말과 민족의식을 가르쳤습니다.
무궁화 운동도 시작합니다.
묘목 7만 그루를 길러 전국에 심게 해 민족혼을 고취시켰습니다.
홍천이 무궁화의 고장이 된 것도 남궁억 선생이 뿌린 씨앗입니다.
[현재호/한서남궁억기념관 문화해설사 : "벚꽃은 더군다나 열흘 안에 다 지지 않냐? 그러나 이 무궁화는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당당히 맞서서 피는 꽃이고 계절을 넘어 피는 꽃이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100일 동안 주야장천 피는 꽃나무다. 나무 한 그루에서 5천 송이에서 만 송이의 꽃이 피고 지거든요. 이런 생명력을 가진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그러다 1933년, 서대문형문소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습니다.
당시 신문조서엔 굴하지 않는 결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불온한 역사를 생도에게 가르친 의사는 어떤가?"
[홍천경찰서 남궁억 경찰신문조서/AI 음성대역 : "아무리 어린이라도 조선민족인 이상 조선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르쳤으니 나는 별로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조선민족으로서는 당연 한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오."]
남궁억 선생 묘역은 2000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독립'이 거저 주어진 게 아님을 기억하기 위해섭니다.
지금도 그 후신인 모곡초등학교와 한서초등학교에선 선생의 정신을 가르칩니다.
[최영복/모곡초등학교 교장 : "남궁억 선생이 이 학교를 세워놓은 그 생각과 그 행동이 몸에 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옳겠다.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큰 공동체를…."]
한 손엔 무궁화, 한 손엔 성경을 든 남궁억 선생의 정신.
'일편단심' 꽃말을 담은 무궁화를 따라 오늘도 쉼 없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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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화에 피어난 민족혼, ‘남궁억’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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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7-14 19:05:29
- 수정2025-07-14 19: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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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제헌절과 광복절이 돌아옵니다.
태극기와 함께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게 바로, 겨레의 꽃 무궁화인데요.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 정신이 꺾이지 않도록 무궁화운동을 주창한 한서 남궁억 선생을, 이번 주 강원유산지도에서 만나봅니다.
김문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첩첩산중에 네모반듯한 묘역이 자리 잡았습니다.
돌계단 양쪽은 무궁화 모양이 지키고 있습니다.
뜨거운 열기를 이겨낸 무궁화가 묘역 곳곳에 끊임없이 피고 집니다.
이곳에 잠든 건 한서 남궁억 선생.
선생의 일생엔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녹아있습니다.
고종의 영어 통역관으로 관직에 입문했지만, 구한말, 나라를 구하기 위해 민족운동가와 언론인으로 변신합니다.
1896년 독립협회 창립에 힘을 보탰고 '독립신문' 영자판 창간에도 나섭니다.
황성신문 초대 사장을 지내면서는 2천만 대중을 일깨우는 기사를 써냅니다.
재임 4년 동안 두 번이나 구속됐지만, 붓을 꺾지 않았습니다.
[현재호/한서남궁억기념관 문화해설사 : "언론인으로서 당신이 사명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왔을 때 교육자로서 사립학교 운동에 본격적으로 헌신하시죠. 그래서 여기까지 내려오셔서 이 시골에다가 학교를 세우고, 그리고 역사책을 쓰고 그러면서 노래를 만들어서 애국 가요들, 사상가들을 만들어서 전국에서 부르게 하고."]
특히, 낙향한 홍천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모곡학당'을 세워 우리말과 민족의식을 가르쳤습니다.
무궁화 운동도 시작합니다.
묘목 7만 그루를 길러 전국에 심게 해 민족혼을 고취시켰습니다.
홍천이 무궁화의 고장이 된 것도 남궁억 선생이 뿌린 씨앗입니다.
[현재호/한서남궁억기념관 문화해설사 : "벚꽃은 더군다나 열흘 안에 다 지지 않냐? 그러나 이 무궁화는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당당히 맞서서 피는 꽃이고 계절을 넘어 피는 꽃이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100일 동안 주야장천 피는 꽃나무다. 나무 한 그루에서 5천 송이에서 만 송이의 꽃이 피고 지거든요. 이런 생명력을 가진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그러다 1933년, 서대문형문소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습니다.
당시 신문조서엔 굴하지 않는 결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불온한 역사를 생도에게 가르친 의사는 어떤가?"
[홍천경찰서 남궁억 경찰신문조서/AI 음성대역 : "아무리 어린이라도 조선민족인 이상 조선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르쳤으니 나는 별로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조선민족으로서는 당연 한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오."]
남궁억 선생 묘역은 2000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독립'이 거저 주어진 게 아님을 기억하기 위해섭니다.
지금도 그 후신인 모곡초등학교와 한서초등학교에선 선생의 정신을 가르칩니다.
[최영복/모곡초등학교 교장 : "남궁억 선생이 이 학교를 세워놓은 그 생각과 그 행동이 몸에 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옳겠다.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큰 공동체를…."]
한 손엔 무궁화, 한 손엔 성경을 든 남궁억 선생의 정신.
'일편단심' 꽃말을 담은 무궁화를 따라 오늘도 쉼 없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
이제 곧 제헌절과 광복절이 돌아옵니다.
태극기와 함께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게 바로, 겨레의 꽃 무궁화인데요.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 정신이 꺾이지 않도록 무궁화운동을 주창한 한서 남궁억 선생을, 이번 주 강원유산지도에서 만나봅니다.
김문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첩첩산중에 네모반듯한 묘역이 자리 잡았습니다.
돌계단 양쪽은 무궁화 모양이 지키고 있습니다.
뜨거운 열기를 이겨낸 무궁화가 묘역 곳곳에 끊임없이 피고 집니다.
이곳에 잠든 건 한서 남궁억 선생.
선생의 일생엔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녹아있습니다.
고종의 영어 통역관으로 관직에 입문했지만, 구한말, 나라를 구하기 위해 민족운동가와 언론인으로 변신합니다.
1896년 독립협회 창립에 힘을 보탰고 '독립신문' 영자판 창간에도 나섭니다.
황성신문 초대 사장을 지내면서는 2천만 대중을 일깨우는 기사를 써냅니다.
재임 4년 동안 두 번이나 구속됐지만, 붓을 꺾지 않았습니다.
[현재호/한서남궁억기념관 문화해설사 : "언론인으로서 당신이 사명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왔을 때 교육자로서 사립학교 운동에 본격적으로 헌신하시죠. 그래서 여기까지 내려오셔서 이 시골에다가 학교를 세우고, 그리고 역사책을 쓰고 그러면서 노래를 만들어서 애국 가요들, 사상가들을 만들어서 전국에서 부르게 하고."]
특히, 낙향한 홍천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모곡학당'을 세워 우리말과 민족의식을 가르쳤습니다.
무궁화 운동도 시작합니다.
묘목 7만 그루를 길러 전국에 심게 해 민족혼을 고취시켰습니다.
홍천이 무궁화의 고장이 된 것도 남궁억 선생이 뿌린 씨앗입니다.
[현재호/한서남궁억기념관 문화해설사 : "벚꽃은 더군다나 열흘 안에 다 지지 않냐? 그러나 이 무궁화는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당당히 맞서서 피는 꽃이고 계절을 넘어 피는 꽃이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100일 동안 주야장천 피는 꽃나무다. 나무 한 그루에서 5천 송이에서 만 송이의 꽃이 피고 지거든요. 이런 생명력을 가진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그러다 1933년, 서대문형문소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습니다.
당시 신문조서엔 굴하지 않는 결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불온한 역사를 생도에게 가르친 의사는 어떤가?"
[홍천경찰서 남궁억 경찰신문조서/AI 음성대역 : "아무리 어린이라도 조선민족인 이상 조선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르쳤으니 나는 별로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조선민족으로서는 당연 한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오."]
남궁억 선생 묘역은 2000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독립'이 거저 주어진 게 아님을 기억하기 위해섭니다.
지금도 그 후신인 모곡초등학교와 한서초등학교에선 선생의 정신을 가르칩니다.
[최영복/모곡초등학교 교장 : "남궁억 선생이 이 학교를 세워놓은 그 생각과 그 행동이 몸에 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옳겠다.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큰 공동체를…."]
한 손엔 무궁화, 한 손엔 성경을 든 남궁억 선생의 정신.
'일편단심' 꽃말을 담은 무궁화를 따라 오늘도 쉼 없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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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영 기자 my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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