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앞에서 주머니 손 넣던 ‘북한 2인자’, 어디로 사라졌나 [뒷北뉴스]
입력 2025.04.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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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해 지역을 방문해 조용원(왼쪽)과 대화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data/fckeditor/new/image/2025/04/25/315831745385708189.jpg)
김정은 위원장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간 큰 남자'가 있었습니다. 5년 전 김 위원장이 태풍 피해를 입은 황해남도를 시찰하던 때 찍힌 사진입니다. 사진 속 인물은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로, 당시에는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대략 차관급에서 장관급 정도 되는 위치로 볼 수 있습니다.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려다 우연히 사진이 찍힌 건지, 아니면 두 사람이 격의 없이 편하게 대화한 건지 정확한 사정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외 선전용 사진 하나도 철저한 기획과 검열을 거쳐 공개되는 북한 체제 특성을 고려하면, 이런 구도의 사진이 특이하긴 합니다.
어쨌든 그는 최근 몇 년간 고속 승진을 거듭 해 왔습니다. 이런 사진이 공개되고 다섯 달 뒤, 북한의 최고위직인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면서 권력 핵심부로 진입합니다. 당의 주요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기준 김정은 위원장을 포함해 5명에 불과합니다. 조용원은 다른 고위 간부들이 해임과 강등, 복권 등을 번갈아 당할 때도 권력의 중심에서 한 번도 밀리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2인자', '실세 최측근'으로 꼽혔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가 돌연 사라졌습니다.
■ 두 달 가까이 사라진 조용원
마지막으로 확인된 그의 모습은 올해 2월 28일, 개성시 개풍구역 지방공업공장 종합봉사소 착공식 보도였습니다. 올해 4월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 계기 간부 참배 보도에서도 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 박태성 내각 총리와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언급됐지만, 조용원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를 할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수행하던 최측근 인사가 두 달 가까이 북한 매체에서 사라진 건 꽤 이례적인 일입니다.
![올해 2월 28일 지방공업공장 조용원(오른쪽 두 번째)가 착공식에서 조용원(오른쪽 두 번째)가 착공식에서 경례를 받고 있다 [조선중앙통신]](/data/fckeditor/new/image/2025/04/25/315831745385775266.jpg)
정부와 정보당국도 조용원의 동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두 달 가까이 (공개) 활동이 없다는 건 주시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며 "과거 사례로 본다면 고령에 따른 은퇴와 발병 외에 혁명화 교육이나 숙청 등 다양한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국가 정보원도 "(조용원의) 신상 변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동향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조용원의 공개 활동이 중단된 시점은 올해 초 김정은 위원장이 간부 기강 잡기에 나선 이후입니다. 김 위원장은 1월 27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확대회의에서 지방 간부의 비위 사건을 두고 “특대형 범죄”라고 공개 질타했습니다. 당시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들은 일제히 “칼날 기강”을 주문하며 규율 준수를 강조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당 간부 기강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용원이 근신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한 조용원은 북한 핵심 권력층 안에서는 보기 드문 '이과 출신' 입니다. 자강도 시골 마을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 보조지도원 같은 말단 실무자로 시작해 최상급 간부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성장했습니다.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16년 제7차 당 대회 때부터였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대회장에 들어와 뒤에 있던 누군가를 불러냈는데, 그 인물이 조용원이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사진에선 다소 건방져 보이긴 했지만, 사실 그를 상징하는 건 '충성심'과 '처세술'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가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수행했습니다. 2023년 8월 김 위원장이 강원도 안변군의 농장들을 시찰할 때, 조용원은 신발 없이 양말을 신은 채로 김 위원장을 따라다녔습니다. 논에 들어갔다 왔는지 양말과 바지는 진흙에 젖어있고, 김 위원장의 말을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수첩을 들고 꼼꼼히 받아적었습니다.
![2023년 8월 조용원이 신발을 벗고 양말을 신은 채(빨간 원)로 김정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다 [조선중앙TV]](/data/fckeditor/new/image/2025/04/25/315831745387283650.jpg)
전문가들은 조용원이 오랜 기간 김 위원장을 수행하면서 의중을 잘 파악하고, 업무 면에서도 기대를 충족시켰을 거라고 분석합니다. 장성택처럼 권력을 위협하는 2인자가 아닌, 유일영도체계를 보좌하는 2인자이기 때문에, 설령 근신 중이라 할지라도 조만간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합니다.
지난 23일 북한이 공개한 새 우표통보를 보면, 다음 달 13일 발행하는 110원짜리 우표에 조용원이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북한에서 우표는 대표적인 체제 선전 수단이고, 고위 간부가 숙청되면 얼굴과 이름이 영상·출판물에서 삭제된다는 점에 미뤄봤을 때 '숙청설'은 근거가 조금 약해진 셈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에서 2015년 5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한 이후로는 최고지도부 측근들을 처형한 사례가 확인되지 않는다"라면서 "2023년 8월 안석 간석지 피해의 책임을 물어 징계했다가 다시 복귀한 김덕훈 당 경제부장의 예처럼, 처벌을 하더라도 100% 복권된다는 게 최근 김정은 정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10월 노동당 창건 80주년, 내년 초 9차 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만큼 조용원에게 '특별 임무'가 주어졌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9차 당대회는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려는 김정은의 '15년 구상'에서 정치·군사·경제 등 모든 분야의 성과를 점검하고 집대성하는 중요한 대회"라면서 "7차, 8차 때도 일종의 TF를 만들어서 준비에 전념하게끔 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을 조용원이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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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앞에서 주머니 손 넣던 ‘북한 2인자’, 어디로 사라졌나 [뒷北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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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해 지역을 방문해 조용원(왼쪽)과 대화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data/fckeditor/new/image/2025/04/25/315831745385708189.jpg)
김정은 위원장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간 큰 남자'가 있었습니다. 5년 전 김 위원장이 태풍 피해를 입은 황해남도를 시찰하던 때 찍힌 사진입니다. 사진 속 인물은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로, 당시에는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대략 차관급에서 장관급 정도 되는 위치로 볼 수 있습니다.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려다 우연히 사진이 찍힌 건지, 아니면 두 사람이 격의 없이 편하게 대화한 건지 정확한 사정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외 선전용 사진 하나도 철저한 기획과 검열을 거쳐 공개되는 북한 체제 특성을 고려하면, 이런 구도의 사진이 특이하긴 합니다.
어쨌든 그는 최근 몇 년간 고속 승진을 거듭 해 왔습니다. 이런 사진이 공개되고 다섯 달 뒤, 북한의 최고위직인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면서 권력 핵심부로 진입합니다. 당의 주요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기준 김정은 위원장을 포함해 5명에 불과합니다. 조용원은 다른 고위 간부들이 해임과 강등, 복권 등을 번갈아 당할 때도 권력의 중심에서 한 번도 밀리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2인자', '실세 최측근'으로 꼽혔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가 돌연 사라졌습니다.
■ 두 달 가까이 사라진 조용원
마지막으로 확인된 그의 모습은 올해 2월 28일, 개성시 개풍구역 지방공업공장 종합봉사소 착공식 보도였습니다. 올해 4월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 계기 간부 참배 보도에서도 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 박태성 내각 총리와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언급됐지만, 조용원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현지 지도를 할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수행하던 최측근 인사가 두 달 가까이 북한 매체에서 사라진 건 꽤 이례적인 일입니다.
![올해 2월 28일 지방공업공장 조용원(오른쪽 두 번째)가 착공식에서 조용원(오른쪽 두 번째)가 착공식에서 경례를 받고 있다 [조선중앙통신]](/data/fckeditor/new/image/2025/04/25/315831745385775266.jpg)
정부와 정보당국도 조용원의 동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두 달 가까이 (공개) 활동이 없다는 건 주시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며 "과거 사례로 본다면 고령에 따른 은퇴와 발병 외에 혁명화 교육이나 숙청 등 다양한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국가 정보원도 "(조용원의) 신상 변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동향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조용원의 공개 활동이 중단된 시점은 올해 초 김정은 위원장이 간부 기강 잡기에 나선 이후입니다. 김 위원장은 1월 27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확대회의에서 지방 간부의 비위 사건을 두고 “특대형 범죄”라고 공개 질타했습니다. 당시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들은 일제히 “칼날 기강”을 주문하며 규율 준수를 강조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당 간부 기강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용원이 근신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한 조용원은 북한 핵심 권력층 안에서는 보기 드문 '이과 출신' 입니다. 자강도 시골 마을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 보조지도원 같은 말단 실무자로 시작해 최상급 간부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성장했습니다.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16년 제7차 당 대회 때부터였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대회장에 들어와 뒤에 있던 누군가를 불러냈는데, 그 인물이 조용원이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사진에선 다소 건방져 보이긴 했지만, 사실 그를 상징하는 건 '충성심'과 '처세술'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가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수행했습니다. 2023년 8월 김 위원장이 강원도 안변군의 농장들을 시찰할 때, 조용원은 신발 없이 양말을 신은 채로 김 위원장을 따라다녔습니다. 논에 들어갔다 왔는지 양말과 바지는 진흙에 젖어있고, 김 위원장의 말을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수첩을 들고 꼼꼼히 받아적었습니다.
![2023년 8월 조용원이 신발을 벗고 양말을 신은 채(빨간 원)로 김정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다 [조선중앙TV]](/data/fckeditor/new/image/2025/04/25/315831745387283650.jpg)
전문가들은 조용원이 오랜 기간 김 위원장을 수행하면서 의중을 잘 파악하고, 업무 면에서도 기대를 충족시켰을 거라고 분석합니다. 장성택처럼 권력을 위협하는 2인자가 아닌, 유일영도체계를 보좌하는 2인자이기 때문에, 설령 근신 중이라 할지라도 조만간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합니다.
지난 23일 북한이 공개한 새 우표통보를 보면, 다음 달 13일 발행하는 110원짜리 우표에 조용원이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북한에서 우표는 대표적인 체제 선전 수단이고, 고위 간부가 숙청되면 얼굴과 이름이 영상·출판물에서 삭제된다는 점에 미뤄봤을 때 '숙청설'은 근거가 조금 약해진 셈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에서 2015년 5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한 이후로는 최고지도부 측근들을 처형한 사례가 확인되지 않는다"라면서 "2023년 8월 안석 간석지 피해의 책임을 물어 징계했다가 다시 복귀한 김덕훈 당 경제부장의 예처럼, 처벌을 하더라도 100% 복권된다는 게 최근 김정은 정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10월 노동당 창건 80주년, 내년 초 9차 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만큼 조용원에게 '특별 임무'가 주어졌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9차 당대회는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려는 김정은의 '15년 구상'에서 정치·군사·경제 등 모든 분야의 성과를 점검하고 집대성하는 중요한 대회"라면서 "7차, 8차 때도 일종의 TF를 만들어서 준비에 전념하게끔 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을 조용원이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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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진 기자 analog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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